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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선 해고한다고 난리인데... 이 남자가 산으로 간 까닭

원천:3377TV   출시 시간:2024-10-02
[김성호의 씨네만세 845] <산이 부른다>(*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MBN의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은 중장년 사이에선 모르는 이가 없는 명작 프로그램으로 꼽힌다. 2012년부터 제작된 이 프로그램은 이승윤과 윤택 개그맨을 앞세워 모든 걸 던지고 자연으로 들어가 사는 이들을 만나는 형식으로 제작됐다. 해당 프로그램은 중년 이후 남성들에게 큰 관심을 받았단 점에서 시대적, 또 세대적 요구가 있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그로부터 12년간이나 MBN의 간판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했으니 그 요구가 이 시대에도 여전하다는 방증이겠다.

어떤 요구일까. 무엇이 이 프로그램이 꾸준히 회자되도록 하고 있는가. 그저 특이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보는 재미일까. 어르신들 곁에서 가만히 앉아 이 프로그램을 보고 있자면 그 성공 비결이 무엇인지 절로 알게 된다. 그저 이색적 광경을 넘어, 그들이 해냈고 TV 앞에 앉은 나는 해내지 못한 것을 살피는 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바로 떠남이다. 모든 걸 버리고 떠나간 이들을 통해 약간의 대리만족과 해방감을 얻는 것, 그와 같은 마음이 이 프로그램의 인기 비결인 것이다.

현대인 사이에서 떠나고 싶은 마음이 크다는 건 각종 지표로도 확인이 가능하다. 이를테면 워케이션과 한달살기 같은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캠핑과 같은 취미도 널리 퍼져나가고 있다는 사실 같은 통계다. 또 한편으로 귀농, 귀촌 인구가 꾸준히 늘고 있다는 사실도 시사하는 바가 적잖다. 농림축산식품부 2022년 통계에 따르면, 도시농업 참여자 수는 2010년 15만 3000명에서 2021년 292만 7000명으로 10년 새 약 19배나 늘었다. 도시, 또 도시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이들이 이토록 많다.

출근하지 않은 이유 물으니... '산이 불러서'라 답했다

▲ 산이 부른다 스틸컷ⓒ 슈아픽처스
<산이 부른다>는 도시를 떠나 자연으로 향한 인간의 이야기다. 그가 떠난 곳은 무려 프랑스와 이탈리아 접경에 위치한 몽블랑이다. 저 유명한 알프스산맥 최고봉인 몽블랑, 만년설로 뒤덮인 봉우리가 절경을 자아내는 산악인들의 꿈의 장소가 아닌가.

주인공은 중년 사내 피에르(토마스 살바도르 분)다. 파리에서 로봇 엔지니어로 일하던 그가 어느 순간 산에 꽂혀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몽블랑으로 향하며 벌어지는 일이다. 말 그대로 꽂힌 것이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그는 출근하길 그만둔다. 몽블랑이 보이는 어느 도시에서 이뤄진 프레젠테이션 발표 도중, 창밖 높이 솟은 산에 마음을 빼앗긴 게 시작이다. 그는 곧장 산악인이 쓰는 장비를 구입하고는 병을 핑계로 출근하지 않는다. 그리고 몽블랑에 오른다.

지난 몇 년 간의 삶 가운데 가장 행복하다는 그의 엽서를 받고서 가족들이 그를 찾아 몽블랑에 온다. 나이 든 엄마와 형, 그리고 동생까지 온 가족이 몰려온 것이다. 그 자리에서 형은 그에게 다시 삶으로 돌아오라며 번뜩 화부터 낸다. 그도 그럴 것이 회사에선 무단으로 출근을 않는 피에르를 해고하기 직전이다. 그에게 연락이 닿지 않아 가족에게 연락을 취했고, 가족들은 겨우 엽서를 받고서야 피에르의 근황을 알았으니 애가 탈 수밖에 없다.

형은 피에르에게 미친 놈이라며 분통을 터뜨린다. 그러나 피에르는 고집불통이다. 산이 좋다며 이곳에 남겠다고 말한다. 일단 모아둔 돈도 있겠다, 굳이 돌아갈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비로소 행복해졌다고 말이다. 함께 말리러 온 동생은 피에르의 표정을 보고는 굳이 그를 말리려 들지 않는다. 엄마도 마찬가지. 그렇게 피에르는 몽블랑에 남는다.

줄거리 없음, 느낌만 있음... 이 영화의 접근법

▲ 산이 부른다 포스터ⓒ 슈아픽처스
뚜렷한 사건이 있는 영화는 아니다. 그저 산 아래서 야영을 하고, 알파인 식당에서 예쁜 싱글맘 주방장 레아(루이즈 보르고앙 분)를 만나고, 다시 산을 오르며, 그곳에서 신비한 경험을 하는 것이 이야기의 거의 전부다. 환상적이긴 하지만 극적인 무엇이 일어난다고 보기는 어렵다. 흔한 기승전결의 흐름이나 목표의 달성 같은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피에르는 산 중턱 어느 동굴 안에서 신비로운 빛과 물질을 만난다. 굳지도 흐르지도 않는, 액체도 고체도 아닌, 그 빛나는 신비로운 무엇이 피에르와 접촉해 기묘한 효과를 일으킨다. 상식을 벗어나는 사건이 일어나는 가운데, 피에르 또한 일상을 벗어나는 경험을 한다.

통상의 산악영화와 <산이 부른다>는 궤를 크게 달리한다. 인간이 정복하지 못한 봉우리에 오르는 도전기라거나 극복하기 어려운 과제를 이겨내는 극복기, 또 재난과 맞닥뜨려 겪는 일을 그린 재난 액션물의 성격을 조금도 내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저 무조건적 도피로 그려질 만큼 피에르의 일상이 힘겨웠던 것도 아니다. 그는 그저 평범한 직장인으로 성실하게 일상을 살아갔을 뿐이다. 다만 현재 아내와 자식이 없는, 조금은 외로운 삶을 살고 있다.

꿈의 산자락, 몽블랑... 그곳으로 향하는 이들

▲ 산이 부른다 스틸컷ⓒ 슈아픽처스
그 전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영화는 그를 굳이 알리려 들지 않는다. 다만 일상으로부터 상처를 입은 이들이 흔히 몽블랑을 찾는단 걸 은근히 드러낼 뿐이다. 고지대에서 알파인 레스토랑 주방장으로 일하는 레아가 홀로 아들을 키우고 있는 것처럼, 또 피에르가 제 가족을 불러 지난 시간이 제게는 즐겁지 않았단 걸 토로하는 것처럼 말이다. 산은 상처 입고 지친 이들에게 휴식과 위안을 주지 않던가.

말하자면 영화는 뚜렷하고 목적이 분명한 작품이 아니다. 몽환적이라 할 만큼 애매하고 모호한 경험 가운데서 신비롭고 미스터리적인 사건이 이어진다. 상징도 은유도 불확실한 가운데, 믿기 힘든 일이 벌어지는 모습을 비출 뿐이다. 그로부터 일어나는 변화 또한 대단치는 않은 것이다. 다만 피에르는 모든 일을 겪은 뒤 산을 내려온다. 몽블랑에서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누군가는 도시를 떠나 산으로 향하고, 또 누구는 산으로부터 마을로 내려오는 것이다. 산은 치유하고 도시는 상처를 입히는 것인가. 그러나 피에르는 사람이 사는 곳으로 돌아오니 자연과 도시는 그렇게 건강한 공존을 이뤄낸다. 적어도 영화에서만큼은.

영화는 피에르의 내면이 변화하는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감독이자 직접 피에르를 연기한 토마스 살바도르는 절제된 연출과 꼭 어울리는 연기를 통해 인물과 그가 마주하는 상황, 또 감정 상태를 관객에게 전한다. 전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위안을 받을 수는 있단 걸 이 영화가 얼마간 보여준다. 말하자면 <산이 부른다>는 지치고 떠나고 싶은 이에게 공감과 위로를 주는 영화일 수 있다.

▲ 산이 부른다 스틸컷ⓒ 슈아픽처스
돌고 돌아 다시 도시로... 이 영화가 말하는 것

물론 아쉬움도 분명하다. 모호한 서사는 영화가 무얼 말하는지, 또 보여주는 것과 의도하는 것이 일치하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그리하여 관객은 제가 느낀 것이 감독이 기획한 것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또한 느린 전개와 애매한 사건들이 영화를 보는 이를 지키게 할 수도 있겠다. 이런 것이라면 차라리 동네 산을 찾아 오른다거나 몽블랑을 제대로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는 게 낫겠다는 볼멘소리도 들려올 법하다. 또한 인물과 사건이 없는 가운데 영화에 집중하게 하는 요소가 얼마 되지 않는단 점도 실망스럽다.

무엇보다 영화가 그리고 있는 신비한 무엇이 끝끝내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단 점은 호불호가 크게 갈릴만한 요소다. 가장 주요한 장치임에도 그것이 도대체 무엇이지, 어떤 역할을 하는지, 피에르에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확실히 보여주지 않아 영화 전체를 애매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건 그대로 열린 결말이라 이해할 이도 있겠으나, 명확한 것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해석도 역할도 불명확한 장치를 쓰는 것을 무책임하게 여기기 십상이 아닌가.

<산이 부른다>는 자연과 도시, 또 인간의 관계를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명확하지 않은 이야기 가운데서도 생각할 만한 점을 수두룩하게 던진다. 영화가 이끄는 대신 관객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그것이 장점일 수도, 단점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내가 어떤 관객인지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한 번 마주해볼 수 있지는 않을까. 이런 영화는 그리 흔하게 마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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