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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보다 나았던 이웃들... 불안한 현실을 극복한 비결

원천:3377TV   출시 시간:2024-09-29
[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위국일기>▲ "위국일기" 포스터 영화 포스터 이미지ⓒ ㈜영화사 진진
코로나19 이후 침체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한국 극장가에 일본영화의 파도가 불어온 지 제법 시간이 흘렀다. 일본영화 붐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마치 소수정예 엘리트 스포츠 문화처럼 보이는 한국과 저변과 기반이 튼튼한 일본 스포츠의 비교처럼 말이다. 그동안 K-콘텐츠 인기에 취했던 한국 영화계의 암울한 전망에 비해 국내외적으로 성과가 쏠쏠한 일본영화의 저력이 단연 돋보이는 요즘이다.

문화예술은 스포츠 한일전처럼 승부나 실적으로 결정될 영역이 아니다. 실시간 국경을 넘어 문화교류가 활발한 상황에서 양질의 작품이 꾸준히 등장해 공감을 받아야만 한다. '한국영화 르네상스' 시대는 이제 전설이 되었고, 하마구치 류스케나 미야케 쇼 같은 신예 거장들의 활약으로 대표되는 일본영화의 탄탄한 기본기가 빛을 발하는 중이다. 한동안 일본 대중문화를 떠받치던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비옥한 토양 역시 한몫을 담당한다. 감성 묘사의 섬세함으로 국내에서도 높은 평가를 얻은 원작을 성공적으로 실사화한 <위국일기> 역시 그런 사례 중 하나일 테다.

비밀요새에 덜컥 침입한 외계인

제법 인기 있는 소설가 코다이 마키오는 두문불출 연재에만 몰두하는 전업 작가다. 오늘도 은둔하듯 원고 집필에 열중하던 그에게 급한 연락이 온다. 사이가 좋지 않아 연락을 끊고 산 지 오래인 언니 부부가 급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둘 다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울먹이는 엄마와도 무척이나 오랜만에 대면하는 마키오. 하지만 언니를 불의의 사고로 잃었는데도 정작 그의 표정은 무덤덤할 뿐이다. 누군가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작은 체구의 여자아이가 한구석에 있다. 언니의 딸 아사다. 아사는 부모의 교통사고를 눈앞에서 목격한 데다, 정식 결혼 대신 사실혼 관계이던 부모 탓에 졸지에 고아가 되었다. 하지만 마키오는 언니의 딸을 그저 인식할 뿐, 위로하거나 보듬으려는 기색은 딱히 없다. 언니와 관계가 무척 서먹했나 보다. 그래도 친지이니 장례식장에서 자리를 지키긴 한다. 그런 마키오 앞에서 아사의 친척들은 큰 충격을 받았을 소녀의 장래를 걱정하는 대신, 천덕꾸러기 취급한다. 부계 쪽으로 누구도 고아를 책임질 생각은 없어 보인다. 그런 떠넘김 현장에 괜히 욱하고 발끈한 마키오는 그저 충동에 따라 이모인 자신이 아사를 맡겠다고 나선다.

하지만 막상 저지르고 나니 마키오는 아사와 함께 살 궁리는커녕, 혼자 지내는 생활에 너무 익숙하다 보니 낯가림이 워낙 심한 터라 독립한 후 처음으로 타인과 함께 지내는 게 불편하기 그지없다. 전날은 자신도 모를 의분에 돌발행동을 일으켰지만, 이제 실전을 치러야 할 상황이 막막할 따름이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그는 몇 안 되는 지인들에게 일일이 연락하며 미성년자인 아사를 후견할 대책과 조치를 하나씩 진행해 나간다.

아사는 의지할 곳이 없다. 장례식장에서 친척들의 무관심을 넘어 천덕꾸러기 취급하는 행태에 이미 상처를 받은 그는 겉으론 태연한 척하지만, 이제 중학교 졸업 예정인 청소년이 멀쩡할 리 없다. 아사는 엄마의 부재를 받아들이기 힘들고, 존재만 알던 이모와 동거가 편안할 리 없지만, 달리 갈 곳은 그렇게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어른' 마키오와 미래가 막막한 '미성년' 아사의 동거일기가 화면 가득 그려진다.

▲ "위국일기"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사 진진
물과 기름 같은 이모와 조카의 어색한 동거생활 레포트

인기 만화가 야마시타 토모코의 여러 작품 중 대표작으로 꼽히는 <위국일기>의 실사영화 기본 설정은 일본 가족 치유 물에서 종종 접하는 뜻밖의 동거생활, 알고 보니 인연이 실처럼 닿아 있던 이들 간에 피어나는 정과 잇닿아 있다. 하지만 원작과 영화가 취하는 방법론은 비슷해 보일지언정, 일관된 태도에선 확연히 유사품과의 차이가 드러난다.

마키오는 아사의 엄마인 친언니와 어릴 적부터 사이가 나빴다. 그저 자매 사이 티격태격이 아니다. 언니는 동생을 한시도 빠지지 않고 학대에 가까운 '가스라이팅'을 벌였다. 마키오는 언니 때문에 자기만의 방에서 그 누구도, 사랑하는 상대조차 들일 엄두를 내지 못하며 살아왔다. 하나뿐인 언니의 혈육을 충동적으로 집에 들였지만, 그렇다고 언니에 대한 정 같은 건 일절 없다. 생길 가능성도 없다. 가족이기에 보듬는다는 논리는 그에게 통용될 구석이 아니다.

대체 왜 언니의 딸을 집에 들인 걸까.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마키오는 원작에서 표현하듯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늑대 같은 눈'으로 장례식장에서 아사의 예정된 고아로서의 운명을 간파하고, 자신이 겪었던 고독과 소외를 이 15살 아이가 답습하길 원치 않은 것이다. '외톨이 늑대'의 본능으로 말이다. 늑대는 사실 정이 많고 가족과 동료를 끔찍이 아끼는, 인간에 의해 이미지가 왜곡된 대표적인 동물이다. 시튼 동물기에서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 '늑대왕 로보'의 사례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팔자에 없는 동거생활을 개시했지만, 시작부터 시행착오의 연속이다. 아사는 왜 이모가 자신을 거둬들였는지 통 알 수 없다. 마키오 집에 처음 들어선 아사가 본 건 도저히 타인을 들일 준비가 안 된, 마치 겨울잠 자는 곰의 동굴 같은 행색이다. 마키오 역시 아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답을 가졌을 리 없다. 부랴부랴 SOS 구조요청을 주변 몇 안 되는 지인들에게 다급히 날린다. 미성년 후견인 신청을 완료하고 법적 보호자가 되긴 했지만,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출발에 불과하다.

세상에서 가장 어색한 조합. 자기만의 방식이 확고하다 못해 외골수인 마키오와 부모님 잃은 현실을 종종 망각하고 뭘 하고픈 지 답을 찾지 못한 예민한 감수성 아사의 동거는 어색함 그 자체다. 그러나 마키오는 뱉은 말 책임져야 하고, 아사는 여기에 자리를 잡고 미래를 모색해야 한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양보하지 않으면서 차이가 너무나 뚜렷한 둘이 공존할 수 있을까? 관객은 침을 삼키며 이들의 일상을 지켜보게 될 테다.

▲ "위국일기"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사 진진
도시 속 작은 마을의 힘

마키오에겐 어릴 적부터 절친한 데다 활달하고 외향적이라 상호보완인 나나와 서로 좋은 감정을 품었지만 (어릴 적 언니에게 시달린 후유증으로) 타인을 깊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바람에 친구로 남은 카사마치가 '변장한 천사'들이 강림한 듯 서툰 이모의 조카 보듬기를 전력으로 돕는다. 마키오가 사교적이진 않을지언정 올곧게 살아왔음을 증명하는 산 증거 격이다.

그들의 존재감은 아사가 아직 들어서지 못한 미지의 세계, 어른들의 삶이란 어떤 것인지 엿보게 해주는 소중한 체험이다. 마치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마을 전체의 협력이 필요하다'라는 교육학 명제를 이들이 작은 마을을 구성하듯 구현하는 그림을 관객은 목격하게 된다. 부모를 잃은 고아라면 응당 상상하는 미래와는 조금 다른 형태로 아사의 결핍은 채워지는 중이다. 마키오는 이모이긴 하지만, 남이나 다를 바 없는 관계이고 그의 친구들은 그야말로 아무 상관도 없는 이들이다.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는 마을 기능의 예시 격이다.

그와 함께 마키오가 고등학교 진학 과정에서 새로이 사귀게 된 친구들은 뚜렷한 목표의식 없이 표류하던 아사에게 긍정적 자극의 촉매로 활약한다. 티격태격 와중에도 신뢰를 구축한 절친 에미리, 그리고 아사가 갖지 못한 개성을 선보이는 새로운 동급생들 활약 역시 무시할 수 없다. 10대 중반, 한창 감수성 예민하고 친구들 사이 질투와 선망, 그리고 경쟁은 일상 아니던가. 새 환경에 적응하며 자기가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을 찾아가는 아사의 성장에는 그런 긍정적인 변화가 순기능으로 작동한다.

아쉬운 점이라면 원작에서 아사가 고교 졸업까지 다루는 데 반해, 영화로 각색하면서 고1 여름방학까지만 다뤄 학교 친구들과 교분이 대폭 축약된 것이다. 잔잔하지만 충실하게 인물들 사이에 밀고 당기는 중력장이 통하듯 관찰하는 재미가 강점인 작품에서 유일하게 급히 축약되는 느낌이라 더 그렇다.

▲ "위국일기"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사 진진
타자와 공존하는 법을 일깨우는 영화의 힘

무엇보다 <위국일기>는 제목을 풀어쓰듯 낯선 나라, 즉 마키오의 세계에 우연히 발들인 아사의 모험담이다. 마키오는 아사에게 자신이 한쪽만 쓴 노트를 건넨다. 생각한 것, 겪은 것, 하고픈 것을 기록해보라는 것이다. 어릴 적 언니의 학대로부터 스스로 구원하기 위해 감행한 글쓰기의 출발점을 아사에게 전수하는 배려다. 소심한 아사가 밴드부에 가입해 처음으로 작사를 해보고 싶다는 도전에 나설 때, 물고기를 잡아주기보다 낚시하는 법을 알려주는 태도다. 마키오 본인도 깨닫지 못했던, 어른의 태도를 보여준 결정적 장면인 셈이다.

아사는 어른이라면 자기 일 척척 알아서 청소건 정리건 잘할 줄 알았던 고정관념을 산산이 부숴버리는 이모가 신기하고 낯설다. 이 어른은 내가 알던 부모님과는 다른 존재 같다. 예전엔 그저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착한 딸로 머물던 아사는 익숙한 편함을 벗고 독립된 어른의 길로 한발씩 딛는다. 부모와 자녀 간 일방통행 대신, 동등한 존재로 각자 입장을 존중하는 대안적인 동거생활이 싹튼다.

영화는 그렇게 가족 신파극도, 냉혹한 세상 홀로서기도 아닌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 씨앗을 품고 살그머니 다가온다. 이 영화에는 편의적으로 갈등을 촉발하는 도구적 악역은 존재하지 않는 대신, 선량하지만 차이를 지닌 이들의 존재감이 은은히 빛난다. 상대를 위해 희생을 감수하는 대신, 서로 협력하는 대안적 관계망이 씨줄 날줄로 엮이는 과정이 풍경처럼 흘러간다. 여성서사의 자기장이 힘을 더한다.

무심코 보면 소소한 일상이 반복되겠지만, <위국일기>는 고도의 섬세함과 함께 가지 않은 길을 함께 걷는 마키오와 아사의 미래를 함께 응원하게 이끄는 마성의 이야기다. 영화를 보고 나면 전 11권 완간된 만화에서 이어질 후일담을 찾지 않을 수 없다. 마치 정주행하던 대하소설이나 연재만화 중간권이 빠졌을 때처럼 그들의 미래가 궁금해 못 참게 될 테니 말이다.

▲ "위국일기"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사 진진
<작품정보>

위국일기
違国日記
Worlds Apart
2024 일본 드라마
2024.10.02. 개봉 139분 12세 관람가
감독 세타 나츠키
출연 아라가키 유이, 하야세 이코이, 카호, 세토 코지
수입·배급·제공 ㈜영화사 진진
공동제공 ㈜KNN미디어플러스
공동배급 ㈜하이스트레인저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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